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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글귀

#17.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

생각하고플때 2014. 10. 8. 10:26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 지금까지 써온 글의 흐름과는 다른 약간은 뜬금없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이 문장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먼저 하나는 "난세가 되어야 웅지를 펼 기회가 있고 두각을 나타낼 기회가 주어진다."는 측면이 있고요. (마왕이 있어야 용사가 될 수 있는게 아니겠어요? 전쟁이 있어야 전쟁영웅이 있을 수 있지요.) 또 하나는 요즘에 와서 생각하고 있는 "난세와 같은 상황 속에서 지위와 역할 등의 기회가 주어져야 영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역사소설 초한지에는 두 주인공이 있지요. 항우와 유방. 이 인물들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두 사람의 출발점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항우는 초나라 명문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고급교육을 받으며 가문의 후계로써의 준비를 해나가요. 지배 계층으로써 충분히 교육받고 혜택받고, 어쩌면 진나라 말기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아니더라도 그는 뛰어난 무장으로써 괜찮은 리더십의 소유자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후 직위와 상관없이 개인의 역량에서는요.

하지만 농민 출신의 유방은 어떤가요? 난세가 아니었으면 미천한 출신의 그가 한나라의 황제로, 농사를 짓지만 후에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군주로써의 면모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 위치까지의 역량을 가졌지만 기회를 잡지못해 농사나 잡고 있는 잠룡과 같았을까요? 1, 2만의 군대를 지휘해보고, 여러 참모들을 거느리며 정치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역할과 지위, 그 기회들이 주어지지 않는데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이렇게 초한지는 이미 만들어져있는 항우시대가 만들어져간 유방이 대비되는 걸로도 보입니다. 물론 두 가지는 완전히 분리된다기보다는 복합적인 부분이 있겠죠. 다만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성장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유시민씨가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해 쓴 "운명이다."에 보면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 2000년 8월 7일 해양수산부 장관 발령을 받았다.
... 2001년 3월 26일 퇴임했으니, 8개월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늘 혼자 정치를 한 것이나 다름없던 내게는 말할 수 없이 큰 축복이었다. 해양수산부라는 정부조직의 수장으로서, 대한민국 국무위원으로서, 나는 국정운영 전반을 보고 배울 기회를 얻었다. >

유시민씨는 노 전대통령이 경험이 필요하다며 자신에게 보건복지부 장관을 권했고, 이 경험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지 이야기 합니다.

사람은 각자에게 주어진 용광로 같은 상황 속에서 마감에 쫓기며 프로젝트에 성공도 실패도 경험하며 여러가지 책임도 지고 이를 감당해가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물론 초야에 묻혀서 오랜 기간 공부하고 뜻을 펴는 사람도 있지만요. (삼국지의 제갈량 처럼요.) 어떤 자리에 가야만, 역할이 주어져야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겁니다.

격동의 현대사에서 우리나라는 고성장 국면을 맞으며 조직은 커져가고 많은 일자리가 생겨났습니다. 일하고 싶은 사람보다 더 많이요. 많은 기회 속에서 한세대만에 거지에서 재벌총수까지 오를 수 있던 이동이 자유로운 시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일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일정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아르바이트 같은 반복 노동만 하게된다면요, 이 사회는 자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회 라고 생각합니다. 상/중/하류층이 고착화되어 부가 대물림되고 자수성가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죠. 비록 잠시 실패하더라도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패자부활전이 있는 사회가 아니지요 지금 우리 사회는요.

제게도 학부때 동아리의 소그룹 리더로 설 수 있던 것은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감히 그럴 역량이 안되는 저에게 일단 멤버들을 믿고 맡기던 순간들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어떤 사람일지 궁금합니다. 아니 생각하기 싫네요. (멤버들이 저를 위해 희생했던 시간들이었죠.)

처음 입사에서 신입사원은 1년 동안은 부끄럼없이 물어보고 다녀도 된다. 라며 키워주셨던 선배님들 생각도 나고요. 지금은 대리/선임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감당해가며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기회가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는데... 이런 사회 구조적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네요.

그리고 조금 깔대기 같지만, "남편", "아버지"의 역할이 제게 주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렵겠지만 기대도 됩니다. 이를 통해 저는 어떤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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