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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할 여건이 주어지지 않아요.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이유로 숨가쁘게 달려야 했어요. 무엇을 할 의지도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고요. 그리고 경쟁에서 한번 뒤쳐지면 다시 기회가 없을꺼 같은 '패자부활전'이 없다는 메시지를 이 나라는 줘요. '사회안전망' 같은게 없어서, 워커홀릭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이 사회의 구조 속에서 잠시 백수라는 반년을 보냈던건 참 행운이었죠. 썩 좋아하지 않던 가정환경과 나에 대해 소위 예수님 나이라는 서른이 되면서 생각했던거예요.

  이재철 목사님은 그의 책 '비전의 사람' 에서 예수님은 서른이 되어서야 사역이 시작하셨는데 이게 좀 이상해보이지 않냐고 이야기하셔요. 어려서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할 정도로 이미 성경에 통달하셨는데 말이에요.
  그 당시 목수는 가게를 따로 가지고 있기보다 각 가정을 방문해서 하는 직업으로 가정사들을 속속히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그렇게 삶을 겪었기 때문에 사람의 심령을 움직이는 팔복과 같은 말씀을 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를 했어요. 예수님조차 서른이 되어서야 사역을 시작하실 수 있으셨다고요.

  평균 수명이 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지금 단순히 1:1로 비교하는건 무리겠지만요. 그때의 서른이 원숙한 어른이었다면 지금의 서른은 어찌보면 이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나이에 가깝죠.
  그렇지만 서른쯤 되었으면 이제 환경탓, 남탓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이건 개인적인 기준이예요. 이 기준조차 보내온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요. 그렇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이제 내 마음과 성품은 내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적인 부분은 굴곡이 있고, 사회적 책임이라는게 있어서 개인에게 돌릴 문제는 아니지만, 성실해도 가난할 수 있고, 일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마음과 성품에 대해서는 부모로부터 제대로 물려받지 못하고, 제대로 양육받지 못했더라도 언젠가 스스로 이제는 책임져야할 때가 오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통령도 언제까지나 전임자 탓만 할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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