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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의 발견은 여기까지 적으려 합니다. 책에서는 노년까지 다루고 있지만 제가 적어보려고 한건 간접으로라도 경험한 곳까지니까요.
마지막으로 "아버지" 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 제가 경험한 아버지, 그리고 제가 되고 싶은 아버지에 대해서요.


1. 경험한 아버지

돈버는 기계로 마모되는 동안, 가족관계는 점점 불편하고 어색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와 정서적 관계의 기초를 놓아야할 30~40대 초반에 야근과 출장이 가장 많다.
- 생애의 발견, 2009, 김찬호, 239p

아버지는 어린 시절 인지하는 세계의 전부였습니다. 어머니에게 저를 대입시키기에는 너무 달랐으니까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보는데 학업을 마치고 가정을 이루고, 그 다음이 지금 보는 아버지 삶같이 흘러간다고 생각하니 어린 마음에도 답답해지더군요.

매일 늦게 들어오시는 아버지는 보통 취해있었죠. "너희를 위해 일하는거다."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하고 있는 아버지는 즐겁지 않아보였거든요. 가정을 돌보는 책임감에 밤낮없이 일만 하는 삶으로 비쳐졌습니다.
그래서 "이게 삶이고 내 앞에 기다리는게 이거라면 나는 별로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 라는 결론을 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지 못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게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넉넉하게 보호해 주시는 등의 이미지 보다 아버지의 육신의 아버지의 이미지가 제게는 더 강해서요.

"산업화의 화려한 성공 신화를 써나갈 때는, 아버지들이 온통 일에 얽매어 있어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집안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분명했다.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그리고 일종의 슈퍼에고로서 위엄이 있었다. ...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경제가 주춤하게 되면서 아버지들의 존립 기반은 결정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 생애의 발견, 2009, 김찬호, 238p

아버지 세대가 이해 안가는건 아닙니다. 산업화는 노동자의 눈물을 연료로 태워가며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 한국의 아버지는 다른데 눈돌릴 수 없을 만큼의 노동 강도를 요구받았습니다. 자연히 가정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죠.

아버지는 가족이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보다 더 중요한 가족이 있죠. 처음 다녔던 회사에서 나오면서 다른 분께 지금까지 하던 프로젝트 업무를 인수인계 하면서 쭉 설명을 드리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설명 들으셨으면 알겠지만... 망해가는 프로젝트 인거 아시겠죠? 괜찮으시겠어요?" 라고 물었는데, 그분이 "가족이 있잖아요. 하라는대로 해야죠." 라고 하시던 말의 울림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함께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잊을 때가 많다. 같은 장소에 공존한다는 것, 몸과 몸이 부대끼면서 체온을 나누는 것,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그냥 느끼는 것, 그 분위기를 공유하는 것 등이 얼마나 고귀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망각하는 것이다. 이런 욕심 저런 강박에 얽매어 부분과 부분으로만 서로를 접속하기 때문이다. 존재 전체로 만난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줄 때가 있다."
- 생애의 발견, 2009, 김찬호, 254p

"공감은 살아갈 힘을 불어넣어 준다. 남루한 마음자리를 보듬으면서 존재에 깊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친밀한 소통으로 재건되는 그 관계에서 아버지는 침묵 속에 감춰 두었던 지혜의 보석들을 하나둘씩 꺼내 건넬 수 있다.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면서 원대한 소망을 그려낼 수 있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그립다."
- 생애의 발견, 2009, 김찬호, 255p

자라가며 아버지가 은퇴할 때까지 아버지와 시간을 보낸 적이 얼마나 있나 생각해 봅니다. 갑자기 집에 오래 머무르시게 되었지만, 서로 불편함만 느낀거 같아요.

아버지와는 기저에 깔고 있는 세계관이 다른데,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다르니 나타나는 삶의 양식도 다른데 늘 부딪히기만 합니다. 어느정도 이야기가 된다 싶으면 이런 주제를 꺼내셔서 서로 차이만 확인하게 되요.

언젠가는 독립한 뒤에 더 소원해진게 마음에 걸려 찾아가서 아버지와 단둘이 대화하다가, 아버지가 말씀하시는거에 생각이 달라서 토를 좀 달다보니, 아버지께선 "뭐 하러왔냐" 며 화를 내시더라고요.
좀 부딪히다가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하는게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어봤더니, "아버지는 말하고, 너는 배우는거지. 난 경험이 많고 전해주고 싶다. 너는 배워야해." 라고 하셨죠. 그때 나는 아버지와 "대화"할 수 없겠구나. 일상을 같이 하기 어렵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던 일상이 이제야 조금 생깁니다. 지난 대선 때 따로 개표 방송을 지켜보다가 제가 결과에 승복하고 나와서 아버지랑 악수하던 기억 등이요. 앞으로 이런 기억을 얼마나 쌓아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앞으로 아버지와 관계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2. 되고 싶은 아버지

지난 글에 썼듯이 가족에게 영향받은건 제 안에 쌓여서 자연스레 가만히두면 저도 아버지를 닮아갈텐데요. 그래서 애써서 노력해야할 부분도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저는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은지 조금 정리해보려 합니다.

지금의 아버지를 아주 부정하는건 아닙니다. 아버지에게 배우고 싶은 점도 여럿 있습니다. 그중 제일 큰건 "책임감"이죠. 그동안 세상을 헤쳐나오면서 성실하게 일하며 가정을 섬기는 것과, 어머니가 오래 아프셨는데 포기하지않고 치료하려 애쓰던 모습들이 기억납니다.

여기에 더하고 싶은건요, 아내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신들도 가정을 꾸려가는걸 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정에 "안정감"을 주고 싶기도 합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한 사람으로 자라가, 저 혼자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사람으로 깊어져가고 싶어요. 불안한 맘이 있더라도 아버지 보면서 편안할 수 있도록이요.

고용없는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요즘은 취업하기조차 어려워져 고용안정성마저 잃어버린 시대가 되었죠.
고강도의 노동을 하며 가정을, 아이들을 다 깊이 돌볼 수는 없겠죠. 그건 그냥 아버지는 슈퍼맨이 되면 된다 정도의 해결책이니까요. 다 할 수 없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분별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로써 가정과 아이들에게 "물질적인 안정" 과 함께 있어주는 "정서적인 욕구" 를 둘 다 가져오기 어렵다면, 함께 있어주는 쪽에 비중을 두고 싶습니다.
재정적인 안정도 중요하지만 공중의 나는 새도 먹이시는 이를, 들의 백합화를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아름답게 입히시는 분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함께 있는, 볼 수 있는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깄다는 거지요.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태복음 6:26-31)

공지영씨의 책 제목처럼 "나는 내가 어떤 삶을 살든 너를 응원할 것이다." 마음으로요. 내 기대를 투영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아이로 자라가게 하고 싶다. 언제나 너를 응원하며, 좌충우돌 네가 헤매고 있을지라도 너를 믿고 기다려줄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지고 싶다. 이 방황을 통해 네가 점점 단단해져가기를 기도하면서... 이게 너를 파괴하지는 않을꺼야. 네가 이를 감당해낼 수 있을거라는 믿음을 가지고요. 한번 꺽이더라도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담아서...
가정을 언제든 네가 찾아와 쉴 수 있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언제든 네가 올 수 있는 곳, 쉼을 얻는 곳을 만들어가고 싶다.

이런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조그만한 바램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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