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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이든지 최고의 가이드는 가능하면 여러 차례 직접 그곳을 다녀본 사람이다. 그래서 여정 속 각 지역의 지형, 기후, 절경, 위험, 난관을 잘 아는 사람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속박에서 인도해 내는 일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자유의 여정을 몸소 밟아왔기 때문이다. - 영혼의 리더십, 2014, 루스 헤일리 바턴, 119p

사막에 가 본 적 없는 사람이 사막에서 다른 사람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은 리더십에 대한 잘못된 환상이다. - 헨리 나우웬, 상처받은 치유자

(하나님이) 모세를 불렀을 때 그는 광야에서 이미 자신만의 여정을 밟고 있었다. 모세는 40년 동안 자기 영혼의 광야를 횡단하고 있었기에, 거기서 하나님을 찾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법을 배웠으며, 자신의 영적 여정을 충실히 밟았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오랜 속박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이 준비하신 자유로 이끄는 일을 맡기 위한 최상의 준비였다. - 영혼의 리더십, 119p

출애굽은 영적 여정에 대한 좋은 비유다. 우리는 영적 속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로 들어가는 여정에 개인으로 또는 공동체로 참여한다. 출애굽은 구원받고 하늘에 있는 우리의 본향을 찾아가는 전 여정에 대한 비유로 볼 수 있다. - 영혼의 리더십, 119p

우리 여정의 단계들은 어떤 장소에 도달하면 끝나는 선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영적 성숙과 자유, 포기를 목표로 계속 나아가는 순환적인 과정이다. 이 과정은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는 영원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된다. ... 자신이 밟아온 여정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원만하고 노련하게 인도하기 위한 최상의 준비다. - 영혼의 리더십, 120p

1. 전자각 단계
첫 단계는 전자각이다. ...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 같이 속박되어 있다는 것과 하나님이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해 주셔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 현재의 방식이 그럭저럭 잘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기에 다들 이렇게 사는가보다 하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들이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전, 그리스도인이 아닌 상태다. 또는 오랫동안 신앙생황을 해 왔지만 그 이상이 꼭 필요하다는 자각은 아직 없는 개인이나 회중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때에 우리를 자각의 단계로 움직이게 하신다. 그때 우리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할 것이다. - 영혼의 리더십, 121p

2. 자각 단계
본 것을 무시하고 그에 수반되는 책임도 외면하려 하지만, 영적 여정을 계속 밟아 가려면 온전히 현실과 대면해야 한다. 부인은 자각보다 훨씬 덜 고통스럽지만, 부인하면 할수록 더욱 속박에 매이게 된다. ... 우리는 기꺼이 진실을 보고 더 명확히 파악하고자 한다. ... 자각에는 늘 우리가 본 것에 대해 반응해야 할 책임이 따른다. 많은 이들이 가능하면 자각의 단계를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것보다 기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순간이 되면 떠나야 할 때가 무르익은 것이다. - 영혼의 리더십, 122p
또한 자각은 새로운 방식으로 살 가능성을 볼 수 있게 한다. 종종 자각을 위해서는 우리가 아직 볼 수 없던 것을 보도록 도와주는 안목있는 리더나 조금 더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리더십의 또다른 역할은 계속해서 사람들의 갈망을 상기시키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가능성을 보게 하는 것이다. - 영혼의 리더십, 124p

3. 전환점
(이제 변화를 꿈꾸게 되고 동경하기 시작했는데) 하지만 종종 상황은 나아지기 전에 먼저 악화된다. ... 상황의 악화는 여정에서 불필요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무엇이든 기꺼이 하겠다는 마음의 전환점에 이르기 때문이다. ... 이 시점에는 상황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우리 역시 "무거운 노동에 지치고 기가 죽어서" (출 6:9) 희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이 시점은 리더에게도 매우 힘든 시기다. 리더는 일들이 바라는 만큼 수월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 하지만 이것은 모두 새벽이 열리기 직전의 어둠이었다. 이때는 다가올 여정을 앞두고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순간이다. - 영혼의 리더십, 126p

4. 우회로
드디어 떠난다! ... 영적 번영의 시기에 들어선다.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이 단계에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도전을 맞닥뜨리지 않도록 길을 인도해 주신다. 의도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직선로가 아니라 우회로로 이끈다. 직선로를 따라 바로 갈 때 생기는 도전을 그들이 아직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블레셋 사람의 땅을 통해 가는게 가장 가깝지만 전쟁을 하면 마음이 돌아설까봐 홍해로 가는 광야길로 돌아가게 하셨다. 출13:17-18) - 영혼의 리더십 , 127p
이 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자유롭게 사는 법과 생존 유지를 위해 그분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며 평탄한 시기를 보낸다. 이때 길러지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능력은 영적 삶의 근간이 되며 첫 도전이 닥쳐와 우리를 "광활하고 끔찍한 광야"(신 8:15)에 들어갈 때 큰 도움이 된다. - 영혼의 리더십 , 127p
이 단계에서 배우는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이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실 때 서두르시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그분은 우리가 자유의 삶이라는 더 큰 책임을 위해 준비되도록 내면을 변화시키는 일에 더 관심을 갖고 계신다. - 영혼의 리더십 , 128p

5. 테스트 기간
이제 도전이 온다. ... 처음으로 커다란 장벽을 만난다. 대개 거의 예상하지도 준비하지도 못한 것이다. ...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첫 장벽은 홍해였다. (도저히 건널 수 없을거같은 홍해 앞에서 애굽 사람들이 추격해오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다. ... (자유와 이를 위해 치러야할 대가 사이에서 양면적인 감정이 들었다.) 영적 여정의 혹독함에 대한 양면적 감정은 그것이 참된 여정이라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 영혼의 리더십, 128p

요약이 어렵네요. 그냥 본문 전체를 적는게 나을거 같기도 하고... 어찌어찌 지우고 지웠는데도 적지 않은 텍스트가 되어버렸네요. 저자는 영적 여정의 각 단계들을 위와 같이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정을 떠나 테스트가 찾아왔을때, 리더는 어찌해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마저 적습니다.


우리는 이런 감정을 리더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 지혜로운 리더는 사람들이 ... (이런 감정을) 힘든 여정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 영혼의 리더십, 128p

한때 자신만만하고 충동적이며 일을 독자적으로 처리하는 리더가 되려고 했지만, 이제는 거대한 위험 앞에서 깊이 있는 영성으로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모세는 그의 영혼이 사람들의 공포와 불평에 사로잡힘으로써 단련되는게 아님을 안다. 대신에 내면, 즉 하나님을 찾는 법을 배운 곳으로 들어간다. ...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화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 영혼의 리더십, 129p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유일한 선택은 그분을 기다리는 것뿐인 때가 찾아올 때, 존재의 깊은 곳에서부터 그분을 신뢰하게 된다. 이전에 기다림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기 때문에, 이제 새로운 기다림의 자리에서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무리가 함께 굳건히 서서 하나님을 믿는 법을 강구할 수 있다. - 영혼의 리더십, 133p

너희는 가만히 있어 그분이 행하시는 것을 보라는 모세의 이야기는 눈앞에 닥친 현실을 넘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는 이의 시각을 보여줍니다. 세상이 아무리 커보여도,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크다고 하는데... 그 하나님을 우리는 볼 수 있을까요?

예전에 한 친구는 제게 기독교는 "기억의 종교"라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처음 닥치면 이에 압도되어 눌리기 쉽지만, 하나님과 함께한 이야기가 많아지고 여러 상황에서 구하시는 당신을 경험하다보면요. 이런 영적 여정이 쌓여가다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전에 나를 구하셨듯이 이번에도 나를 구하심을 믿는다고 반응할 수 있다는 말이죠. 하나님과 함께한 이야기를 쌓아가는 것이 영적 여정입니다.

이렇게 리더가 영적 여정을 걸어봤어야 다른 이를 영적 여정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건 당연하지만, 이 여정을 다 걷고 나서야 리더가 될 수 있는건 아닙니다. 여정 중간 중간에도 리더로 누군가를 품으며 살아가죠. 감당할 만한 시련을 주시는 분 앞에서 우리는 순환하고 반복되는 과정을 겪습니다. 고통을, 고난을 통해 단단해져가며 자라가는 길이 영적 여정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고통, 고난이 줄어든다고 "잘되는 나", "복된 나" 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고통의 원인 중에 타락한 세상으로 인한 건 믿지 않은 이와 어차피 같고, 나를 정금과 같이 단련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고난을 사용하시니까요. 오히려 깊이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 자라갈수록 고난이 늘어가는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처음 신앙의 여정에 들어섰을 때에는 빨리 자라서 빨리 편해지고 싶었는데 그 자람도, 속도도 당신의 주권에 달린 일이며, 분명 서두르시는건 아니지만 내게 가장 좋은 길, 꼭 맞는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돌아보며 느끼는거 같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고후12:9) 라고 바울에게 말씀하시듯 제게도 말씀하시는 기분이랄까요?
돌아보면 많이 자란 것도 같은데 갈 길이 또한 아득하네요. 당신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까지 가야하니까요. :)


저는 상상합니다.

일생을 통해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하나님의 속도에 맞추어 자라가는 것을 꿈꿉니다. 이게 참 아프지만 나를 파괴하지는 못할거라는 믿음으로 하나하나 견뎌나가서요.

한 사람을 사랑하는 남편이고 싶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자매와 함께 자라가다보면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자리잡고 있기를 기대해요. 아이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빠가 되어가고 싶습니다.

요즘은 가정공동체와 하나님나라 운동이 분리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합니다.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 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건강하게 잘 자란 가정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 운동을 안할리 없고,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자기 가정을 또한 돌보아 좋은 가정공동체가 되지 않을 수 없지 않나는 생각이죠.

은사는 스스로를 위한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고 하죠. 공동체에 주신 은사들이 오롯히 쓰일 수 있었으면 해요.

제게 주어진 달란트로 가능하다면 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살맛나는 세상'에 일조할 수 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나온 세월만큼 하나님과 함께한 이야기가 쌓여 조금은 사랑과 지혜가 커져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노년이 되고 싶어요.
물론 그때에도 여전히 내게 허락하신 한 사람과 로맨스는 계속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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