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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정/가족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올 가정,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갈 새 가정. 저는 이 사이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새 가정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아내를 맞새 새롭게 꾸려나갈 가정이 정말 내가 경험했던 가정과 단절하여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자 결혼의 성격이 달라진다. 예전처럼 가문들 사이에 이뤄지는 집단적 결속이 아니라, 남녀가 자신의 선택과 책임 속에서 치르는 개인적 약속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행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아 예전의 결혼관이 혼재되어 있는 한국 같은 사회에서는 부모와 결혼 당사자 사이에 갈등이 종종 빚어진다."
- 생애의 발견, 2009, 김찬호, 160p

우리 나라에서 결혼은 부부간의 개인적인 언약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과의 화학적인 결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좀더 개인적인 부분으로 약화되는 면도 있지만요. 하지만 부부가 감당하기 힘든 부동산 가격 덕에 재정적으로 독립해서 결혼하기 어려운 우리 나라의 여건상 부모로부터 받은 만큼 부부의 발언권도 잃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부모님의 간섭과 고부 갈등으로 대표되는 여러 갈등의 시작이지요.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여겨져 타인에 대한 긴장이 쉽게 느슨해진다. 그래서 다른 사회적 관계에서라면 앞뒤를 따져가면서 삼갈 말들을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다. 공공장소에서라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자제할 폭언이나 폭력이 가정에서는 너무 쉽게 행사된다. 결혼 이전에 각자의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감정의 습관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부모들이 주고받으면서 자기에게 자연스럽게 가르쳐 준 화법이 무의식적으로 재현된다. 가학과 피학이 실타래처럼 꼬이면서 대물림되는 복잡다기한 가족사가 끈질기게 지속되는 것이다."
- 생애의 발견, 2009, 김찬호, 185p

그보다 더 우려되는 건, 성장과정에서 가정에서 받은 영향입니다. 어릴 때 성장하면서 가정에서 특히 부모님을 통해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자연스레 행동거지에 배어나고, 가장 싫어하는 모습까지도 닮는다고 하죠.

가족 간의 오래된 관계가 나를 따라다닙니다. 그건 각자의 사고체계와 행동거지에 배어있습니다. 어느새 내가 경험한 우리집이 기준이 되고 우리집과 같이 만드려고 합니다.

고도 성장기에 부모 세대의 노고는 많이 감사하는 부분이지만, 그에 따라 대부분의 가정에 제대로된 가정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도 인정해야할 부분인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부부간에 깊이 사랑하는걸 아이들이 자연스레 배울 수 있는 가정, 언제나 집에서 안전함을 누리며 전인격적 성장을 이뤄가는 아이들이 있는 가정을 이뤄가기 위한 고민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발화 속에 깔고 있는 감정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또는 의식한다해도 그것을 말로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고 빙빙 둘러 이야기하거나 퉁명스럽게 다그치고 따져 묻는 식으로 감정을 드러낼 뿐이다. 그것은 또 다시 상대방의 부정적인 감정 에너지를 자극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 부부도 관계의 건강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 생애의 발견, 2009, 김찬호, 186p

부부가 함께 알고 존경할만한, 조언을 주의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선배 조언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부부사이의 관계 만으로는 처음부터 마음을 모아가기 어려운거 같습니다.

김영봉 목사님이 쓰신 상처와 치유에 대한 책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를 보면 "누구나 아프다." 라는 챕터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깨어진 세상이며, 이에 따라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자랄 수는 없다는 거지요. 상처가 있고 어두움이 있습니다. 그 상처와 어두움이 나를 만들어갑니다. 그래서 망각했던 상처가 어느 순간 그 흉한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먼저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저는 그래서 결혼 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살면서 저런 상처와 어두운 부분들을 끄집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요. 학생일 때보다는 좀 더 성숙한 사람, 믿을 만한 친구들이니 이걸 드러냈을 때, 나를 정죄하고 멀리하기 보다 품어줄거라 기대하면서요.

여러 가정을 끄집어내보자. 다른 가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뒤섞여 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기준들을 많이 깨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것이 또 하나의 기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을 기준삼아 여기서는 이랬다며 아내에게 폭력으로 들이대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집과 지금 함께살고 있는 집이 기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산지 2년이 되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그전부터 알던 친구들이니 관계는 4~5년 된 친구도 있지요. 이제는 조금 가족같은 느낌도 듭니다. 자극에 반응하는 역치가 낮아졌다는 거지요. 오래된 관계는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 있나봅니다. 그동안 쌓인 관계 만큼의 역사가, 어떤 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주르륵 떠올립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아서요. 같은 부분에서 부딪히고, 상처 받고, 상처 입히다보니 서로 연약한 부분에서는 남들에게보다 훨씬 빠르고 크게 화가 납니다. 같은 집에 사니까 피하지도 못하구요.

그렇다면 새로운 사람만 만날꺼냐.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면 친해지고 관계가 깊어지면 이제 만나지 않아야 겠지요. 정말 깊은 관계들은 남지 않게 될텐데... 친할수록 조심해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걸 넘어가야 더 깊은 관계에 이를 수 있을거 같아요.

요즘은 이런걸 배우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예비 신랑 수업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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