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리더십을 논하기 이전에 준비되어야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상처와 치유" 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이만하면 해피앤드이고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를 많이 보여주지만, 오늘날의 심리 치료 관점에서 보면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모세는 혼란스러운 아동기를 보냈음을 알 수 있다. - 영혼의 리더십, 2014, 루스 헤일리 바턴, 47p 여느 사람들처럼 모세도 자신의 상황적 고통을 다루는 몇몇 대응기제를 마련했을 가능성이 높다. ... 이런 기제는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거의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현재의 인간관계를 교란하고, 하나님이 초대하시는 인생행로를 밟아가는데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그 정체를 깨닫는다. - 영혼의 리더십, 48p (히브리인을 ..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영혼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마태복음 16:26)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을 다 얻고도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 사역에서 성공을 거두고도 영혼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의를 주실지 모른다. ... 영혼은 교회나 단체에서 쉽게 빠져나간다. 그런 교회나 단체에 가보면 성령이 떠나고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 교회는 영혼을 잃을 때 평범해지기 시작하고 더 이상 생명을 나누어주지 못한다. - 영혼의 리더십, 2014, 루스 헤일리 바턴, 17p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누리도록 돕는 데 지쳤어. 이제 나도 하나님을 누리고 싶어" ... 내 영혼의 경험에서 흘러나오던 리더십이 그 순간에는 하나님의 실제와 단절되어 있었다...
오랜 기간 소그룹의 리더 역할을 맡아왔는데, 올해는 조금 더해져서 제게는 좀 벅차다고 생각될만치의 일을 하고 있네요. 그 와중에 여러 군데에서 이 책이 선물로 들어와서 한번 생각해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읽어보려 해요. 책을 따라 모세의 인생을 따라가며, 그가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이끌어가도록 준비되고 성장해가는지 찬찬히 지켜보려 합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책의 머리말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제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준비는 '내 영혼은 건강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임을 오늘 깨달았습니다. (어느 젊은 목사) - 영혼의 리더십, 2014, 루스 헤일리 바턴, 12p 리더로써 무엇보다 먼저 "내" 영혼이 건강한지부터 보았으면 좋겠다는거죠. 나..
생애의 발견은 여기까지 적으려 합니다. 책에서는 노년까지 다루고 있지만 제가 적어보려고 한건 간접으로라도 경험한 곳까지니까요. 마지막으로 "아버지" 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 제가 경험한 아버지, 그리고 제가 되고 싶은 아버지에 대해서요. 1. 경험한 아버지 돈버는 기계로 마모되는 동안, 가족관계는 점점 불편하고 어색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와 정서적 관계의 기초를 놓아야할 30~40대 초반에 야근과 출장이 가장 많다. - 생애의 발견, 2009, 김찬호, 239p 아버지는 어린 시절 인지하는 세계의 전부였습니다. 어머니에게 저를 대입시키기에는 너무 달랐으니까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보는데 학업을 마치고 가정을 이루고, 그 다음이 지금 보는 아버지 삶같이 흘러간다고 생각하니 어..
오늘은 가정/가족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올 가정,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갈 새 가정. 저는 이 사이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새 가정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아내를 맞새 새롭게 꾸려나갈 가정이 정말 내가 경험했던 가정과 단절하여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자 결혼의 성격이 달라진다. 예전처럼 가문들 사이에 이뤄지는 집단적 결속이 아니라, 남녀가 자신의 선택과 책임 속에서 치르는 개인적 약속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행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아 예전의 결혼관이 혼재되어 있는 한국 같은 사회에서는 부모와 결혼 당사자 사이에 갈등이 종종 빚어진다." - 생애의 발견, 2009, 김찬호, 160p 우리 나라에서 결혼은 부부간의 개인적..
이번에는 "삼십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책에서 가장 와닿았던 시기죠. 아마 제가 지금 이 시기의 초입을 보내고 있어서 일껍니다. 삼십대에 대한 생각과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제 고민을 담아 보았습니다. 제 주위의 친구들도 보통 이십대 중후반에서 삼십대 중반까지에 분포해 있으니, 이걸 읽는 분들도 그 또래가 많겠죠. 읽어보시면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 "'나이가 들어간다.' 는 말이 어울리고 실감도 나기 시작하는 연령, 그러나 그에 걸맞는 연륜이나 인격을 갖추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삼십대다. 사회적인 위치는 달라지지만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변수는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 - 생애의 발견, 2009, 김찬호, 101p "삼십대로 접어들면 머뭇거림이나 시행착오에 대해..
"공부가 대입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대학 공부마저 취업을 위한 시험 준비로 획일화되는 상황에서 지성은 거의 실종되어 버린다. 도구화된 공부는 열정을 수반하기 어렵다. 삶과 무관하게 보이는 지식을 강요받으면서 학업에 대한 냉소주의가 싹튼다." - 생애의 발견, 2009, 김찬호, 68p 획일화된 교육 속에서 똑같은 사람이 양산되는데 이런 친구들에게 갑자기 창의성을 요구하고 개성있기를 강요합니다.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는 창업에 성공하고, 어린 나이부터 어떤 비전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지 못한 나는 뭔가 잘못된 것처럼 이야기 합니다. "그런 행운을 얻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린 시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흐트러짐 없이 매진하여 성공한 사례들은 청소년들에게 용기를 줄 ..
"무대에 서면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질문을 했는데 그 배우가 대답하기를 '나는 항상 관객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한다는 생각으로 한다.' 라고 하더군요. 무대에서 자신의 생명력은 바로 그것이라고..." - 생애의 발견, 2009, 김찬호, 66쪽 진로 탐색하는 학생이 10년차 연극배우에게 어떤 생각을 하며 무대에 서는지에 대해 물었을 때, 그가 한 대답으로 나옵니다.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고 찾아준 관객들에게 배우로써 그가 대하는 방식이죠. 그가 한 연기를 통해 웃고 울으며 따뜻한 밥 한끼 먹은 것처럼 채움받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묻어나 보여요. 책의 맥락과는 다르지만, 비단 이 이야기는 연극배우 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시사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보면서 참 "사람에게 대하는 자세"와 닿아있지 않나 생..
"우리는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배우지 못했다. 우리의 수명은 늘었지만 시간 속에 생기를 불어넣지는 못하고 있다." - 우리 시대의 역설, 밥 무어헤드 저자는 위의 글을 인용하며 생물학적인 "생존"과 가슴 뿌듯하게 차오르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생활비를 버는 법을 가르치기 이전에 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지 가르쳐야하는거 아니냐고 말하죠. 평균 수명이 늘어 자연스레 늘어난 노년의 시기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할 때라는거죠. 새로 주어진 시간이 단지 "생리적인 연명"에 불과할 것인지요. 저자는 개인적인 역사와 서사를 써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고 해요.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하며, "삶의 흔적들을 건져올려 자아의 빛깔로 아로새길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고 말합..
몇몇 분은 아시겠지만 작년에 한두달 정도 "저를 움직여가는 글귀들"을 나눈 적이 있었죠. 기억에 남는 글귀들과 그에 따르는 생각들을 모아 글로 정리해서 나눴습니다. *이렇게요 : #0. 내 삶을 바꾼 한 구절 http://diarysj.tistory.com/2 여러 가지로 좋았던 시도라며 스스로 평가합니다만, 결국 멈춰버린건 무엇보다 주기적인 "입력" 이 없어서였던건 아닐까 싶습니다. (직장생활하면서 매일 글을 쓴다는게 어렵기도 했지만요.) 그런 글귀를 마음 속에서 끄집어내는거 자체가 오래걸렸죠. 나름의 소재고갈로... 그래서 마음 속에 떠오르는 글귀들이 어느정도 정리되고 나면 자연스레 새롭게 다가오는 글귀들에 대해 적고 싶었습니다. 마침 저에게는 하나님과 약정한 직장생활 10년 동안 내게 정말 좋았던 ..
더 부끄러운 것은... 잘못함 그 자체가 아니라, 내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것. 잘못을 사과하고 회개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것. 내 잘못이 반복되어서 옆의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것. 더 부끄러운 것은... 잘못된 생각이 아니라, 잘못됨을 인식했을때 내 생각을 수정하지 못하는 것. 나이가 들면서 완고해져가고, 자존심만 높아져 그 잘못된 생각을 지키기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 더 부끄러운 것은... 자랑할게 없는게 아니라 내게 있는 알량한 작은게 자랑거리가 되는 것. 마치 다 내꺼인양, 내가 잘해서인양 잘난체 하는 것. 죽을 때 가지고 가지도 못할 물질이 자랑이 되는 것.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2:24) 결혼을 이야기할때 많이 인용되는 성경구절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포인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하는데요. 부모를 떠난다는 거와 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룬다는 거죠. 먼저는 부모로부터 독립해가는 과정인거 같아요. 한국사회에서 결혼은 당사자만의 일은 아니었죠. 아니 오히려 요즘처럼 부부에게 좀 더 많은 결정권이 있던 시기가 있을까 싶습니다. 연애조차 못하고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했어야할 정도로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죠.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는 속성이 결혼식에 짙게 남아있습니다. 부모와 일가 친척들의 행사이기도하고, 부모는 또 그동안 냈던 축의금을 거두어들이는 자리이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서구사회처럼 결혼하면서..
삶이 참 치열합니다. 그래서 고단합니다. 하루 하루 삶의 무게를 버텨내고 나면 다른데 눈을 돌릴 여유도 찾기 힘듭니다. 직장인이든, 자영업을 하든 이 땅에서 경제 활동을 한다는건 자본을 가지지 못한 이에게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가진건 한 명분의 노동력밖에 없습니다. 자본에 비해 노동은 언제든 외국인 노동자로, 공장의 해외 이전으로 대체될 수 있는 가치일 뿐입니다. 지금 당장 밤을 새워서라도 주어진 일을 완수해내지 않으면, 건강이 상하더라도 이 프로젝트를 기간내에 끝내지 않으면, 밀려날거 같아서 놀아달라는 아이를 떼어놓고 직장으로 갑니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에 옆에 있어주지 못합니다. "다음에"라는 지키지못할 약속만 남기고요. 그렇지만 이렇게 충성해도 직장인으로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는건 ..
요즘 사회를 설명하는 단어에 피로사회 라는 단어가 있죠. 이와 비슷하게 성과에 집중하는 사회, 녹초가 될 때까지 일하게 만드는 사회로, 잠시 쉬면 영원히 낙오될 것같은 두려움에 열심히 달리게 만드는 사회... 그 사회 속에 사는 우리들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어 등의 각종 학원에, 내신에, 대학 입시에 뒤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하고 달려왔고요. 그리고 취업 하나의 관문이 된 사회에서요. 항상 무엇인가 하고 있어야할거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려요. 그렇게 이유도 모른채 달려오다가, 저에게 참 좋았던건 대학 졸업 후의 반년간의 백수 생활이죠. 그런 쉬어감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충분히 쉬고 그동안의 피로도 날아간 후에, 진짜 하고 싶은건 뭔지, 나는 누구고 뭐가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저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지금도 나에게 유효한지, 어떻게 신앙이 형성되어 왔는지 돌아봅니다. 변증서를 읽던 기억, 왜 믿을 수 없는지 왜 믿기지 않는지를 기도하며 묻던 시절을 생각하면서요. 읽으시면서 각자의 스토리도 떠올려보았으면 좋겠어요. *중간까지는 '개인사'라서 넘기시고 후반부만 읽으셔도 됩니다. 1. 제 이야기 저희 외할머니는 제가 태어날무렵에 전도사님이셨어요. 그리고 목사님이 되셨지요. 우리 외가쪽에서는 처음 믿었다고 들었는데요. 자연스레 어머니도 교회에 나가 집사님이 되셨고, 이에 비해 친가 쪽에서는 결혼을 통해 교회 다니시는 분도 생겼지만 결혼 당시에는 아무도 안계셨고요. 다만 아버지만 개인적으로 성당에 다니셨어요. (그래서 저는 어릴때 유아세례를 성당에서 받았죠. 초등학교 3학년때까..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피렌체에서 시작됩니다. (여러 관점이 있지만 여기에서 시작했다는게 다수설이죠.) 메디치가는 금융업으로 얻은 막대한 부로, 성장한 가문으로, 정치적 영향력도 차츰 확대해갔는데요. 피렌체를 지배하면서 당대 가주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는 특히 예술가들을 후원하는데 힘썼고, 당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피렌체로 모여들었습니다. 이 때 모여든 사람으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 다비드 상으로 유명한 미켈란젤로가 있었고요. 다재다능하고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를 남긴 레오나르도 다 빈치. 신곡을 쓴 작가 단테,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보티첼리 등이 있죠. 미술, 조각, 작가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한 도시에 모여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중세를 깨고나와 예술사에 남는 새로운 시대를 열 수..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 지금까지 써온 글의 흐름과는 다른 약간은 뜬금없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이 문장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먼저 하나는 "난세가 되어야 웅지를 펼 기회가 있고 두각을 나타낼 기회가 주어진다."는 측면이 있고요. (마왕이 있어야 용사가 될 수 있는게 아니겠어요? 전쟁이 있어야 전쟁영웅이 있을 수 있지요.) 또 하나는 요즘에 와서 생각하고 있는 "난세와 같은 상황 속에서 지위와 역할 등의 기회가 주어져야 영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역사소설 초한지에는 두 주인공이 있지요. 항우와 유방. 이 인물들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두 사람의 출발점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항우는 초나라 명문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습니..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면 그 의견이 다르다. 당신 의견이 비록 옳다하더라도 무리해서 남을 설복시키려 하는건 현명하지 않다. 사람들은 설복당하기를 싫어한다. 의견이란 못질과 같아서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자꾸 깊이 들어갈 뿐이다. 진리는 인내와 시간이 저절로 밝혀준다. - 스피노자 설득의 요소들 > 로고스(논리): 10%, 파토스(감성): 30%, 에토스(인격): 60% -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rhetoric) 中 위의 문장들을 보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대충 감이 잡히시죠? 오늘은 설득과 진심에 대해 생각을 적습니다. 바른 소리를 들으면 맞기는 맞는거 같은데 왠지 반발심이 드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이 부분에서 스피노자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건 설득에서 논리는 10%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스스로 거듭나, 자신을 바로잡고, 절망을 떨치고 일어나 희망을 가지기 위한 모든 노력의 출발점은 늘 우리 자신의 경험이어야 한다. 우리는 오로지 역사가 우리를 데려다놓은 그 지점에서부터만, 우리의 행위들이 축적된 그 지점에서부터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새롭게 시작해야만 한다. - 윈델 베리 "삶은 기적이다." 中 윈델 베리의 "삶은 기적이다."의 도입부에 잠시 스쳐지나가는 문장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인데, 이미 몇 번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참 더 읽을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는 여기에 대해 짧게 썼지만 생각을 좀 더 끌어내보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1.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개인적 경험 안에서 그렇다. 흔히 책을 읽는다는건 거인의 어깨에 서는 거라고 비유합니다. 그 어깨 ..
가장 뜨겁게 하나님을 만났던 때에서 어느새 제게 하나님은 가장 좋았던 시절에 좋았던 하나님으로 기억되어 갑니다. 지금의 현실 속에서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시는 분으로, 점점 내 인생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는 하나님, 아니 제가 지워가는거겠지요. 현존하시는 분, 지금 나와 동행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길 바래요. 처음 회사에서 밤늦게 코드를 짜면서 지혜를 구하던 기억이 납니다. 안 풀리는 문제들 속에서 머리를 쥐어짜며 제 한계를 절감하면서 주님께 묻던 그 시절의 기도들 말이어요. 이쪽으로 보내셨으면 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시면 안되겠냐고, 이 문제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당신은 알고 계시지 않냐며 모니터 앞에서 드리던 기도. 지금 나와 이 코드를 함께 짜시는 분, 그 분께 지혜를 구하면서요. 한..
하나님을 믿고나서부터 (전문 용어로 영접하고나서) 부각되는 죄가 하나 있습니다. 그건 기도하지 않는 죄 입니다. 이 죄는 '하나님을 정녕 믿는지' 와 '자기 중심성' 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믿는지, 나는 무엇을 믿는지, 정녕 하나님을 믿는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 분의 광대하심과 지극히 높으신 뜻을 알며,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으면 엎드려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분을 알고, 신뢰한다면 자연스럽게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제 안의 뿌리깊은 자기 중심성을 돌아봅니다. 마치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 것처럼 삽니다. 혹은 살아계시더라도 지금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하루를 보낼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어려움과 고통..
"광야에 서면, 어려움과 고통이 찾아오면, 진짜 내가 누구인지 드러난다." 고 생각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좋을 때는 누구라도 좋은 사람일 수 있다는 거지요. "곳간에서 인심난다." 란 속담이 있는 것처럼 여유가 있으면 주위를 돌아보고 돕기 쉽잖아요. 제가 하우스에 공동체에 이리저리 투자하고 있는 것도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여유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건 아닌가 돌아봅니다.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어요. 어느 순간부터 이만하면 나도 꽤 괜찮은 사람 아닌가라며 스스로 높이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졸업할 때가 되어 다음 진로를 위해 입사지원을 했었죠. 그런데 서류조차 통과 안되면서 시간이 흐르더니 어느새 졸업식을 앞두고 할 일이 없어진 거예요. 그때 제가 사회에 나갈 때를 대비해 ..
배우 이지아씨가 지난 8월 11일 힐링캠프에서 했던 이야기입니다. 서태지씨와의 결혼에 대해 만약 내 딸이 나와 같은 선택을 한다면 어떻게 할지 묻자 이렇게 대답했어요. "아마 무슨 얘길해도 안들릴꺼다. 그런데 이 한 마디는 꼭 해주고 싶다. 그 시간을 걸어나오면, 그 순간 그토록 중요했던 것이 영원히 중요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이 날 힐링캠프에는 가십거리가 될만한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서태지는 출산과 컴백을 앞두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적절한 시기였는지 논란이 있습니다만 잠시 접어두고요. 이 문장 만큼은 하나의 선택과 그로 인해 감당해야했던 삶의 무게가 묻어나는듯 싶습니다. 선택을 할 때 그렇습니다. 순간적인 감정에 매여서 쉽게쉽게 선택하지만은 선택에 대한 책임은 간혹 평생까지도 이어집니다..
웬델 베리가 '통섭'의 주장에 반하여 쓴 책 '삶은 기적이다.' 에서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는 문장입니다. '리어왕'에서 가져온 문장인데요. 이 비극은 리어왕 집안과, 리어왕의 충신인 글로스터 백작 집안의 배신과 회복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중 글로스터 백작이 아끼던 둘째 아들에게 배신을 당해 두 눈이 먼 상태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고 그가 예전에 쫓아냈던 큰 아들 에드거가 자신을 숨기고 그의 길을 인도하면서 나오는 대목입니다. 글로스터 백작은 절망 속에서 에드거에게 절벽으로 인도하도록 부탁합니다. 에드거는 평지로 인도하고 바로 앞이 절벽이라 이야기합니다. 백작이 이를 모르고 뛰어내리려고 하고, 잠시 기절했다가 일어납니다. 에드거가 절벽 아래를 지나는 다른 사람으로 ..
위키에서는 아래와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1963년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아렌트는 주장했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간단하게 정리하면요, 나치의 친위장교였던 아이히만이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1급 전범으로 재판정에 섰는데, 그 대학살의 주인공이 어떤 흉신악살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여느 평범한 가장과 같았다는 겁니다. 단지 자신은 명령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며 스스로를 변호했다고 하는데요. (물론 이건 변호라서, 실제는 아니다 적극..
제가 좋아하는 여러 인물들의 성공담을 들으면서요, 나중에 어떻게 되었더라 라는 모습을 많이 봐요. 그에 비해 저는 아직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거 같아요. 나름대로 주제 파악이죠. 요셉에게 노예로, 죄수로 어디에서든 신실하게 살아오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마다 배워야할 것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총리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모세에게 40년 광야 시절이 없었더라면 바로 앞에서 당당히 서서 요구사항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요? 다윗에게 사자나 곰을 잡아죽이던 목동의 시기의 과정을 제한다면, 그가 용감하게 골리앗 앞에 설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조차 사역 전에 목수의 일상을 경험하고 그 이후에 사역을 감당하셨듯, 그 후에야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성품에는 천재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
중학생 즈음에 무협지를 접했어요. 인과 관계없이 기연을 얻어 (절벽에서 떨어지면 은거기인이 구해주거나, 산삼밭이고...) 세상을 울리는 고수가 되고, '자매'들이 줄줄이 엮여서 고민인 주인공의 모습이 부러웠어요. 읽다보면 주인공과 내가 동일시 되는 기분이 좋았어요. 괜시리 장풍 포즈(?)를 취해보고, 친구들과 칼싸움을 하다 휘어진 우산이 몇 개였던지 모르겠네요. 지금도 간간이 읽어요. 폴 투루니에가 "모험으로 사는 인생"에서 말하듯 무협, 판타지와 더불어 소년만화나 영웅물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본능적 욕구인 모험심을 대리 충족시키는 부분이 있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고 싶은 마음도 함께 있는건 아닌가 싶어요. 상상 속에서라도 대리 만족으로라도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내가 나의..
생각할 여건이 주어지지 않아요.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이유로 숨가쁘게 달려야 했어요. 무엇을 할 의지도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고요. 그리고 경쟁에서 한번 뒤쳐지면 다시 기회가 없을꺼 같은 '패자부활전'이 없다는 메시지를 이 나라는 줘요. '사회안전망' 같은게 없어서, 워커홀릭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이 사회의 구조 속에서 잠시 백수라는 반년을 보냈던건 참 행운이었죠. 썩 좋아하지 않던 가정환경과 나에 대해 소위 예수님 나이라는 서른이 되면서 생각했던거예요. 이재철 목사님은 그의 책 '비전의 사람' 에서 예수님은 서른이 되어서야 사역이 시작하셨는데 이게 좀 이상해보이지 않냐고 이야기하셔요. 어려서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할 정도로 이미 성경에 통달하셨는데 말이에요. 그 당시 목수는 가게를..
'복음전도', '사회참여' 를 각각 강조하던 시기에서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다. 로 의견이 모아지며, '총체적 복음' 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을 나누어 보면요. 어느 것 하나를 강조하기보다, 하나님을 믿을 때 어느 부분 하나 놓칠 수 없다. 복음의 영향력은 삶의 모든 부분으로 파급된다는 거죠. 그래서 내가 하는 행동들 하나하나에, 내 주위 이웃과 사회에 대해 생각이 없으면 안되겠다는 거예요. 누군가가 대신할 몫으로 돌리지 않고, 모르는게 있으면 배우고 받아들이기를 그치지 않는다.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묻고... 결국 한편으로는 공부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연결되죠. 그래서 '나는 선교사가 될꺼야.', '나는 선생님이 될꺼야.', '목회자가 될꺼야.' 등등의 비전이 뚜렸하게 없..
이 다음에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뭐라 말할까. 그 때에는 부끄러움 없어야지. 우리 서로 사랑해. 하나님이 가르쳐준 한 가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미움 다툼 시기 질투버리고 우리 서로 사랑해. -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中 처음 하나님께 (오래) 기도했을 때, 저는 하나님께 '나는요' (살아온 이야기 나누기)를 했어요. 살아오는 동안 기억나는 순간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당신은 어디에 계셨는지도 물어봤어요. 때론 상한 마음으로, 때론 이건 꽤 잘하지 않았느냐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다가, 어느 순간 할 이야기가 떨어지더군요. "생각나는 건 이제 다 이야기했다." 란 마음이 들었죠. 그렇게 얘기한게 두시간 정도 였던거 같아요. 이 다음에 예수님을 만나면, 그렇게 어떻게 살았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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